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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지 않으면, 내일은 졸아야 한다. 잡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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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교육, 도대체 어떡하란 말인가

 

자발성에 방점을 찍고 기르겠다는 접근이 아이의 안정감 부족을 낳아 소극적 태도의 빌미를 제공하는 사태.

 

기획된 육성을 내걸고, 창의력 길러주기 위해 사다준 장난감이 오히려 아이의 창의력 확장을 제약하는 참사.

 

맞벌이로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해 죽겠는데, 심심해 주리를 틀던 아이가 집안에 나뒹구는 사물로 세계를 창조, 스토리까지 만들어 노는 기적.

 

교육내용에 허점이 많은 역량부족을 딛고, 외려 그 허점을 통해 운신의 폭이 넓어진 아이가 채움의 기쁨 속에서 자기주도 학습으로 나아가는 행운.

 

 

 

 

 

 

 

 

 

아이는 아이대로 환장한다지만, 부모노릇하기도 욕 나오는 세계에서 아이와 부모의 관계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쌍방과실 스트레스의 대향연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대응이 아이의 대부분을 결정짓는다'는 정신분석적 견해는 부모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부모의 대응이야 어쨌건, 스스로 삶을 치유하고 나아가는 힘을 부정한다면, 인문학 따위 아무런 소용도 없겠지요. '지 인생 결국 지가 사는 거다'의 관점에서 아이는 더 이상 부모를 원망할 수 없고, 삶은 보다 큰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어쩌면 교육의 영역에 대해 과도한 믿음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요. 공교육과 그 대립항으로서의 대안교육 모두 교육의 목적과 내용에 골몰할 뿐, 교육의 난점과 한계에 관해서, 어느샌가 잊어버린 건 아닌지, 공상해봅니다. 과학 맹신은 아주 자연스럽게 비판적으로 수용하지만, 교육 맹신은 끝내 놓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나를 향한 욕망보다, 내 아이를 향한 욕망을 내려놓기가 더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더 나은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희망과 맞닿은 지점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고요.

 

 

부부 싸움 한번없이 완벽하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낸 부모가 있다고 칩시다. 이상적인 부모로서의 모습, 모방의 대상으로서 '바름'을 거의 최대로 구현한 가정이라 할지라도, 아이는 그것 때문에 또다른 강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다양한 장점을 지닌 사람들 속에서 성장한다"는 문장은 곧 "인간은 다양한 결함을 지닌 사람들 속에서 성장한다"는 말과 동일한 구조 속에 놓입니다. 교육의 허점을 짚어내긴 쉬우나, "이것이 바른 교육이다"를 외치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교육에 관한 접근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한 가지 분리가 유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라는 집단'을 대상으로 삼은 교육과 '내 아이라는 개체'와 나의 교섭관계는 엄밀히 말해 다른 판입니다. 후자는 도저히 일반화하기 어려운 개별적 상황을 고려하지요. 옆집 똥꾸가 무척 성공적으로 받아들인 교육이 우리집 빵꾸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모든 아이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훌륭한 교육이 있다면, 교육이란 테마로 이렇게까지 머리 싸맬 필요 없었겠지요.

 

하다 못해 책 읽는 방법 하나만 가지고도 수많은 '바름'들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닥치는대로 최대한 많이 읽는 게 좋다는 청탁불문 다독을 권합니다. 조지훈은 아무런 책이나 마구 읽는 남독을 경계하라 말하지요. 무엇이 교육적으로 바른 읽기일까요? 회상률을 높이기 위해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보는 재독, 창의적 발상을 위해 전혀 다른 주제의 연결을 강조하는 병렬 독서, 빠른 정보의 흡수가 핵심이라 주장하는 밑줄과 메모술, 정보의 내재화에 집중하는 글쓰기 중심 독서... 이쯤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나름대로 다 바름을 제시하고 있는데, 무엇이 최종 바름인지 알지 못할 뿐더러, 서로의 바름들이 모순되는 관계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론, 이런 걸 제2명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 다음으로 부모가 반드시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쁘더라도 아이를 더 사랑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보다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따위의 뻔하지만, 실상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이야기만 되뇔 수 있을 뿐입니다. 앞서 밝힌대로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이의 미래 모습에 나의 지분은 생각보다 적다는 내용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교육은 계획적 활동입니다. 의도성이 배제된 것은 일단 교육의 범주에 넣지 않는 경향이 강하지요. 교육은 계획적이나, 의도된 변화를 받아들이는 아이는 전혀 입장이 다릅니다. 아이는 의도성을 가늠할 수 없는 복잡계를 누비며 성장합니다. 교육으로 한 아이를 어찌할 수 있다는 믿음이 훌륭한 신념으로 작용하기 위해선, 가늠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깊은 인정이 필요합니다. 악보로 치면, 한 마디가 완전히 화성에 어긋나는 듯 보여도, 전체 노래의 흐름에서 보면, 절묘한 조화로 거듭날 수 있는 것처럼요.

 

 

 

 

 

 

 

 

교육 방식은 잘 모르겠지만, 꽤 괜찮은 업적이라 떠받드는 인간들의 탐구 방식을 거칠게 분류하면,

 

① 진실은 분석에 있다.

② 진실은 종합에 있다.

③ 진실은 경험에 있다.

④ 진실은 대립개념에 있다.

⑤ 진실은 실천에 있다.

 

정도로 요약이 됩니다. 진리 탐구라는 것이, 생존을 위한 세계 인식의 차원에서 출발했고, 결국 호기심으로 환원된다고 보면 우리 개개인은 위의 다섯 가지 방식을 모두 사용하며 살아왔습니다. 각자 나이가 들수록 비중의 차이가 벌어지겠지만, 다섯 가지 방식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세계를 헤쳐나가지요.

 

다섯 가지 방식을 모두 내장한채 태어난 우리의 가능성이 일련의 교육을 거치며 위축되어온 부분. 증명하기도 어려우나, 그 의도치 않은 누수의 영역이야말로 아이와 부모, 교육의 목적과 난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주제에 대한 실낱 같은 힌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불특정 다수에게 보편타당한 바름은 '니 꼴리는 대로 읽으세요' 밖에 없습니다. 나는 대체 어떤 방법에 꼴리는가를 탐색하는 과정이 핵심인 것이지, 그거 다 생략하고 전혀 다른 특질로 판이한 환경에서 자라온 듣도 보도 못한 인간의 방식 따위 사이즈가 꼭 맞을리 없지요. 네,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내 아이에게 그나마 적합한 방법인가'를 고르는 선택의 문제로 범위를 좁힐 수 있습니다. 그래봤자, 난감하긴 마찬가지입니다만.

 

아이가 자신의 방식을 탐색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디딤돌은 안정감입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진격하기 위해 안정감은 필수 보급품입니다. 불안에 잠식되면, 두려움이 호기심을 억누르게 되지요. 여기서 아이의 폭은 매우 좁혀집니다. 두려운가, 두렵지 않은가가, 호기심보다 앞서서 판단 근거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충분한 안정감을 주고 받는 부모가 좋은 부모다를 제1명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마저도 간단한 사안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선순위를 설정해두면 부모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부모의 스트레스가 줄면, 아이 역시 직관적으로 보다 큰 안정감을 느끼지요. 청소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간의 인지와는 다르게 자식 교육은 절대 뿌린 대로 거둘 수 없는 영역입니다. 교육을 떠나 생명 자체가 그리 간단한 인과 관계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인간이 다 파악할 수 없는 신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신비의 영역이 몇 평 쯤 되느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질지언정, 아예 그런 영역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백보 양보하여 그런 신비가 없다 치더라도, 과연 통제할 수 있는가는 또다른 난제입니다.

 

나는 분명히 베이킹 파우더 섞어서 빵을 조장했는데, 떡하니 떡이 튀어나오는 게 자식 농사의 세계입니다. 억울하지요. 콩 심은 데 팥 나고 팥 심은 데 콩 나는 밭입니다. 그러니 자식의 그릇됨을 두고 삶을 통째 자책할 필요도 없고, 자식의 훌륭함을 두고 온천지 우쭐할 자격도 없습니다. 아이와 내가 부모 자식 관계로 이어온 시간들은 결코 결과로 평가될 수 없는 무엇이니까요.

가장 위로 받아야할 당신은 부모입니다

 

교육은 어쩌면 영원한 이상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양비론, 양시론적 관점만 늘어놓고 이렇다할 결론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살아갈수록 특정 짓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아진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교육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아이와 부모의 관계는 허상입니다. 교육은 다양하지만, 모든 아이와 부모를 꿰뚫는 공통점은 하여간 뭔가 문제란 사실입니다. 그 문제는 괴롭지만,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적합한 방식을 끊임없이 교섭하는 당신, 하다하다 안 되니 어디 다른 학교라도 보내보자는 당신, 자식을 지원하기 위해 영혼을 팔아서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당신, 맞벌이로 바빠서 남들처럼 과외다 대안교육이다 신경 과다로 쌍방 스트레스 키우는 일조차 하지 못해 미안한 당신. 당신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1명제를 놓지 않는 한, 누구도 당신보다 더 나은 부모는 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부모 파이팅.

 

 

 

 

 

 

 

 

 

Posted by 잡치기